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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득용 시인, 문경문학관 이사장 |
| 김용사 탁무(鐸舞)
취호당 최재문
백두대간 주흘기맥 적벽에 뿌리내려
운달산 구름벼랑 습곡을 덮 씌우고 꿰맨 그림자 기운 발자취 따라 붉은 황장목 솔향이 자비로 피어나서 좌우 위아래 오금을 주고 끄떡여 흥을 보태고 자진모리 감아도는 지그재그 탁무는 법어의 반영을 불렀으니
망각의 덫을 뽑아 탄주를 읊고 고운 현에 깊은 감흥은 구명의 빛금 따라 산 섶이 머금은 숲 향의 늪으로 숲에 쌓인 새 울음이 온통 탱자 빛이라 비운 마음 아련히 돌아보니 응진전 풍경의 몸짓이 백팔번뇌이거늘
비우고 낮춘 염불 삼매경은 무 아무심이라
구름 여울 구비 넘고 뉘 없이 떠나는 길 행과 연을 선율로 읊는 독경이니 연향 가득한 연밥에 하늘이 가득한데
머묾의 탁무는 장삼 속 해탈의 여유여라
탁무는 목탁을 가지고 추는 춤이다. 쇠로 만든 원형의 종같이 생긴 타악기에 맞추어 추는 고대의 무속적인 춤 또는 지금의 강강수월래 같은 무용의 춤이라 할 수 있지만 수행을 하는 스님이 아닌 이 시의 오브제(Objet)는 김용사 풍경이다. 풍경이 탁무로 어우러진다. 빛이 색이 되고 색이 빛으로 찬란하다. 어찌 사람만이 부처가 될 수 있는가. 백두대간 운달지맥에서 만나는 하늘과 구름, 나무와 풀 한 포기, 꽃이며 돌, 이끼, 물소리, 새소리마저 견성(見性)이 될 때쯤 시인은 “붉은 황장목 솔향이 자비로 피어”난다고 한다. 황장목(黃腸木)은 금강송이다. 우리 민족이 가장 사랑하는 소나무이다. 김용사 대웅전 뒤편에는 수백그루 금강송이 잠시 명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진모리 감아도는 지그재그 탁무”로 예불을 드리고 있다. 관능의 춤이 진양장단 중모리를 휘몰아쳐 흥이 더하면 부처의 법어가 수직으로 일어서는 천년고찰 김용사다.
인간의 삶은 망각곡선(forgetting curve)를 그린다. 기억유지의 추가적 시도가 없으면 누구나 망각의 덫에 빠지지만 시간이 지난 후 기억재생이 더 뛰어난 과회상(過回想)이 선명해지는 것은 기억의 현(絃)을 타는 일이다. 그 탄주에 “산 섶이 머금은 숲 향의 늪으로/ 숲에 쌓인 새 울음이 온통 탱자 빛”이 되면 화자는 에둘러 마음을 비우지만 오히려 응진전(應眞殿)이 백팔번뇌가 된다. 중생의 미련함 때문일까. 수행을 통해 더 이상 번뇌가 없는 경지에 이르면 공양을 받을 만 하다고 하여 ‘응공(應供)’의 아라한이 된다. ‘아라한’은 ‘나한’이라고도 부르는데 진리와 하나가 되었다고 하여 응진(應眞)이라 하며 이들을 모신 곳이 응진전이다. ‘김용사 응진전 석조 16나한 좌상 일괄’은 경북 유형문화재 제512호이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으나 17세기 중반에 다시 지은 것으로 석가모니를 본존에 좌우로 미륵보살과 제화갈라보살이 모셔져 있다. 응진전 뜰에는 불심으로 붉게 핀 배롱나무 꽃이 한창이다. 가지 사이 연리지는 사랑의 징표가 아니라 부처의 자비로 인연을 맞고 있다.
시인의 불교적 사유가 리터러시(literacy)로 되는 이 시는 조지훈의 ‘승무’나 신석초의 ‘바라춤’을 연상시킨다. “비우고 낮춘 염불 삼매경은 무 아무심”이라니 마치 경전의 한 구절이다. 하여 “구름 여울 구비 넘고 뉘 없이 떠나는” 제행무상 독경소리 또한 행과 연이 자연을 닮아 처처에 연꽃 향기로 하늘을 가득 채운다. 탁무가 머묾은 장삼 속 해탈이 되고 세속적 번뇌가 풍경으로 승화되는 고색창연한 서정의 향기에 빠진다.
------ 취호당 최재문(翠湖堂 崔在文, 1945~ ) 대구 출생. 시인, 수필가, 칼럼니스트. 《한국문학시대》 시 등단(2016), 《창작산맥》 수필 등단 (2017), 국제펜한국본부 이사, 한국현대시인협회 감사, 호서문학 동인, 대전문인협회 회원, 대전유교문화진흥원 초대원장, 시집 『선비 낙향하다』(2018) 『어찌하랴, 예의와 염치를』(2020), 한국현대시 특별상 수상(2019), 대한민국 전통예술부분 명인 대상(2018) 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