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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득용 시인, 문경문학관 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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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새재 김정순 내가 문경을 잘 몰라도 봉암사 김용사 같은 유구한 절은 알고 있지요
내가 문경을 잘 몰라도 조령산과 주흘산 같은 아름다운 명산은 알고 있지요
내가 문경을 잘 몰라도 새재의 과거길 같은 절경의 유산은 알고 있지요
내가 문경을 잘 몰라도 찻사발과 도자기 같은 도공들의 작품은 알고 있지요
일반적인 시가(詩歌)는 끝부분에서 리프레인(refrain)이 반복되는 경향을 보이지만 이 시는 연(聯)의 첫머리 행(行)이 반어법(反語法)으로 시적 언어작업이 이채롭다. 반어법은 문장의 의미를 강화하는 ‘말하고자 하는 것’과 ‘의미하는 것’ 사이에 긴장 혹은 갈등이 늘 존재한다. 하여 외형률과 내재율에서 느껴지는 화자의 어조를 자신의 내면세계로 독백하는 듯 하지만 ‘잘’이라는 부사가 ‘충분히’ 하나의 유기적 통일체를 이루고 있다. 어쩌면 표면상으로는 모순된 표현이겠지만 음미할수록 실제 의미가 두드러지는 논리적 모순(logical contradiction)으로 연결시키고 있다.
시인은 “내가 문경을 잘 몰라도”라며 겸손하게 시치미를 떼면서도 세계 명상 선원이 있는 구산선문 천년 고찰 봉암사와 30년 수행정진을 마친 성철스님이 1965년 첫 법회를 열고 설법을 했던 김용사 정도는 알고 있다며 스스로 무진등(無盡燈)이 되어 우리에게 마음의 불을 밝힌다. 또한 지성(知性)의 길이며 과거(科擧)의 길이었던 조령산과 주흘산이 새재의 아름다운 옛길을 지키는 역사와 문학의 서사(narration)임을 상기시킨다. 시인의 능청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마치 팔불출처럼 문경을 자랑하고 싶어 한다. 망댕이 가마로 빚은 “찻사발과 도자기 같은/ 도공들의 작품”들이 조선의 선비정신을 담은 고졸(古拙)함으로 달항아리로 뜨는 문경백자를 빠트리지 않고 있다.
이 시는 주제의 원형(archelype)이 문경이다. 그러나 회화적인 심성(Image)을 중시하며 시에서 일정하게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소리의 규칙적인 운율이 잘 가미되어 있다. 시인은 문경을 사랑한다. 그 사랑은 자신의 삶에 대한 사랑의 고백으로 문경의 속살까지 발가벗기고 시를 읽는 모든 이들에게 카타르시스적 공감을 준다. 한편의 시를 쓴다는 것은 글의 완성으로 더 이상 쓸 것이 없거나 채울 것이 없는 종결상태가 아니라 빼거나 버릴 것이 없는 에필로그에 재치 있는 마침표를 찍는 일이 아니겠는가.
------ 김정순 수필가(195*~ ) 대구 출생. 계간 「문장」 수필 당선 등단(2008), 한국문인협회 문경지부 회원, 글사랑문학회 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