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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득용 시인, 문경문학관 이사장 |
| 박달나무
박찬선
이 나라 고운 산새들 중에서도 목소리 제일 고운 산새들만 모여 사는 문경 새재
새소리에 반해 떠날 줄 모르는 나는 아무래도 단단히 신명이 든게 아닌가
모두들 떠났다가 훌훌 털고 도회로 떠났다가 철 늦게 돌아오는 검은 방울소리 무거운 어깨 위로 눈물 젖은 별빛이 내려 서러운 임진년의 별빛이 내려 피 흘린 요람의 땅이여
오늘은 낮은 허리 아래로 구름이 일어 한 겨울 함박눈은 한으로 퍼붓고 잠 못 이루는 긴 밤에 골짜기의 물을 깨워 신명나게 방망이질을 한다 살풀이하듯 방망이질을 한다.
박달나무는 신령스러운 나무다. 단군신화의 신단수(神檀樹)로 수목신앙의 원형이며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생명의 나무이기도 하다. 박달나무는 문경의 특산품으로 목질이 단단하고 치밀하며 다듬이 방망이, 홍두깨, 절구공이 등으로 사용되며 한국의 아이언 우드(iron Wood)의 대명사로 불린다. 뿐만 아니라 우리 민족의 한이 서린 아리랑 가사에도 등장한다. 문경새재 아리랑은 정선과 진도 밀양 아리랑보다 먼저 1896년 미국 선교사 호머 헐버트 박사(1863-1949)에 의해 외국에 소개되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아리랑으로 2012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 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운 공존의 서정은 물리적 시간을 초월한다. 시인은 문경새재가 “이 나라 고운 산새” 중에서도 “목소리 제일 고운 산새”들만이 모여 사는 곳이라 한다. 이 시에서 ‘소리’는 공학적으로 단순한 공기의 파동이 아니라 시상의 형상화가 은유보다 내밀스럽게 상징의 환유를 구축하면서 산새소리는 경사스러운 소식을 전하는 매질이 된다. 그 산새 소리에 반해 떠나지 못하는 시인은 박달나무로 서서 “아무래도 단단히 신명이 든 게 아닌가”라며 반문하지만 화자는 “모두들 떠났다가/ 훌훌 털고 도회로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는 산업화시대의 이농(離農)과 귀촌의 역도시화(counter urbanization) 이동현상을 무성영화처럼 말없이 바라보다 끝내 “눈물 젖은 별빛”이 된다. 그 순정한 별들이 “서러운 임진년의 별빛”을 소환한다. 전장터라고 별이 빛나지 않았을까. 별은 유기적 순환체이다. 이윽고 시인의 고운 서정 세계는 서사를 잉태한다.
시인의 서정이 “구름이 일어” 의태어를 모은다. 함박눈이 펑펑 오는 정도가 아니라 “한으로 퍼붓는” 폭설이 되어 산골짜기 계곡의 물을 깨우면 새재는 오래 전 실종되었던 박달나무의 귀환으로 다듬이 방망이질을 한다. 깊어가는 겨울밤 호롱불 외풍에 흔들릴 때 잠결에 들려오던 우리 어머니와 여인네들의 애환 서린 다듬이질 소리는 낭만이 아니라 한풀이였음을 시인은 상상력이 아닌 삶의 체험에서 건져 올린 통찰력으로 명징하게 전한다.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1976)는 존재와 시간의 명제에서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 했다. 시인은 고향을 떠나지 않고 상주와 동학, 낙동강을 숙명적으로 견인하고 있다. 박달나무 또한 새재의 요람으로 한겨울밤 우리의 오감을 깨운다.
------ 박찬선(1940~ ) 시인, 경북 상주 출생, 1976년 『현대시학』 등단, 시집 『돌담쌓기』 『상주』 외 5권 평론집 『환상의 현실적 탐구』 시극 『때가 되면 다 된다』 설화집 『상주 이야기』1.2, 흙의 문학상, 경상북도 문화상(문학), 대한민국향토문학상, 이은상문학상, 펜경북문학상, 한국문학상, 한국문인협회 경북지회장, 국제펜클럽 경북지역위원회장, 한국문인협회이사장 역임 현. 한국시인협회 회원, 대한철학회 고문, 낙동강문학관 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