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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득용 시인, 문경문학관 이사장 |
| 달빛과 새재를 동행하다
김도솔
거친 맞바람에 세월을 짊어지고 등 시린 그림자 하나 새재로 들어서면 옛길이 온 가슴 열어 시린 등을 끌어안는다 적막을 유영하던 개똥벌레 불 밝히며 반갑다 어서 오라 손짓하듯 반겨주고 흙길은 지친 두 발을 부드럽게 감싸준다 윤슬이 부려놓은 물그림자 들며 날며 어둠을 여미는 고즈넉한 계곡물소리 교귀정 말 없는 정이 쉬어가라 발 붙든다 새들은 잠을 청할 둥지를 찾아들고 계곡물 돌 틈에서 꾸구리도 잠이 들면 그림자 휘청이는 밤을 달빛이 도닥인다 한 모금 약수로 가쁜 숨을 축여가며 시오리 굽잇길 저미고 편 이 길에다 세월을 내려놓고서 처진 어깨 활짝 편다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 1898-1956)는 ‘나의 시에 운을 맞춘다면 그것은 내게 거의 오만처럼 생각된다’라며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라 했다. 그러나 시인은 달빛의 서정을 텍스트로 쓰고 있다. “거친 맞바람”은 산곡풍이다. 여름철 산등성이는 계곡보다 빨리 더워진 공기가 상승하여 계곡의 서늘한 공기가 산사면을 거슬러 올라 발생되는 대기이동으로 바람의 크기나 방향은 뉴턴운동 제2법칙의 지배를 받는다. 온도차이가 클수록 바람의 속도는 빨라지고 기압차가 많이 날수록 바람의 강도는 세진다. 저녁이 되면 반대 현상으로 골짜기로 바람이 분다.
시인은 “세월을 짊어지고/ 등 시린 그림자 하나”가 되어 문경새재 옛길을 걷는다. 바람으로 일렁이는 세상의 번뇌가 자연의 관성 앞에 경건해진다. 개똥벌레로 총칭되는 반딧불이는 길 잃은 사람들의 마음을 환하게 밝히는 어둔 세상의 길라잡이로 청정한 지역에서만 서식하는 대표적인 환경지표종이다. “적막을 유영하던 개똥벌레 불 밝히”는 것은 사실 짝을 찾는 구애의 몸짓이지만 은하수가 되어 아름다운 여름밤을 유혹한다. 퇴계 이황이 찬하(攢賀)한 “윤슬이 부려놓은 물그림자 들며” 나는 용추계곡이 고즈넉하게 어둠을 여미고, 경상감사가 업무를 인수인계하던 교귀정 소나무 길손들에게 쉬어가라 발 붙드는 “말 없는 정”이 달빛에 어룽진다. 새들도 둥지를 찾고 용추계곡 ‘꾸구리 바위’ 물소리 잦아든 것을 보면 필경 “꾸구리도 잠이”든 게 분명하다. 물속에서 꾸꾸꾸 소리를 낸다고 이름 붙여진 꾸구리는 2005년 멸종위기 야생동식물 2급으로 지정되었다.
서양에서 자연(Nature)은 ‘자연, 천성, 본질’이라는 명사이지만, 동양에서 자연(自然)은 ‘스스로 自’ ‘그럴 然’으로 ‘스스로 그러하다’라는 형용사 부사의 개념이 담겨있다. 하루에도 밤낮이 있고 일년이면 사계절이 순환된다. 삶과 죽음 또한 한 길이듯이 이러한 이치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하는데 우리 사회는 끊임없이 합리성을 무장하여 탐진치(貪瞋癡)하고 있다. 자연과 인간이 둘이 아니고 하나이듯 노자의 도덕경은 욕심을 내려놓으라 한다. 소나기가 오면 온종일 내리지 않고 회오리바람도 아침 내내 불지 않는다는 희언자연(希言自然)은 본래 자연은 말이 적다는 뜻이다. 달빛과 새재를 동행하는 시인은 “시오리 굽잇길 저미고 편 이 길”을 걸으면서 지치고 힘든 삶의 세월을 내려놓으라 한다.
------ 김도솔 시인, 경북 문경 출생. 나래시조 신인문학상(2022), 문경새재 전국시낭송대회운영위원장, 제15회 조지훈예술제 시낭송퍼포먼스대회 대상 수상, 한국문협문경지회 회원, 작가사상문인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