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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득용 시인, 문경문학관 이사장 |
| 지린 향 이상현 1960년대 즈음 살다 살다 지쳐 막장 찾아온 목숨들 2천 미터 지하 갱도 석탄 방독면 쓰고 오늘이 사는 끝날로 받은 목숨값 탄가루 작업복 안주머니 두 번 세 번 만져봐도 확실히 오늘은 내가 살아 있어 처음 불어본 하얀 풍선껌 같은 누우런 봉투 목구멍 탄가루 밀어내라 주는 돼지고기 매달 한 근 탄광촌 월급날이면 석탄가루 뒤집어쓴 하양 멍멍이들도 돼지갈비 뜯고 지폐마저 취해 비틀거리는 선술 대폿집 시커멓게 흩날리는 늦은 밤 깊은 바닥엔 광산촌 강아지들 펄렁거리는 지폐 흰 눈인 줄 알고 마냥 즐겁다 봄날 아버지 속옷 지린 냄새
광산촌 사람들을 막장인생이라 했다. 지하 2천미터 갱도의 막다른 곳에서 탄가루를 마셔가며 생사의 기로를 넘나들던 아버지에게서 늘 땀에 쩔은 지린내가 났지만 가족들을 위한 노동은 숭고(崇高)하여 시인은 시큼한 찌린내를 지린 향(香)으로 소환한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석탄은 국가 에너지 근간산업으로 탄광촌마다 사람들이 모여들어 한때 문경인구는 16만명을 넘어섰다. 남한에서는 제일 먼저 문경 탄광이 개발되었으며, 진평왕 31년(609) 정월에 경북 영일군 갈탄지역 모지악의 땅이 타면서 연기가 났다라고 석탄의 역사를 『삼국사기』는 적고 있다.
생존을 위협하는 절대적 빈곤(absolute poverty)의 1960년대 먹고 살기 위해 “막장을 찾아온 목숨들”이 어쩌면 “오늘이 사는 끝날로 / 받은 목숨값”의 간줏날이면 어김없이 대폿집으로 향하던 광부들의 일상을 선명하게 그려낸 화자의 형상성(形像性)이 애환에 젖는다. “탄가루 작업복 안주머니/ 두 번 세 번 만져보아도” 누런 봉투의 촉감은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관조적 대조(對照)의 안도감이 아닌가. 성희직 시인은 광부들을 고대 신화의 「프로메테우스(Prometheus)」의 후예라 했다. 하늘의 불을 훔쳐 인간에게 내준 까닭에 제우스의 노여움을 사서 캅카스(Kavkaz) 산의 바위에 묶여 날마다 독수리에게 간을 쪼여 먹히는 형벌을 지하의 막장에서 불을(석탄) 캐내는 광부들이 진폐증으로 폐가 굳어가는 천형(天刑)에 비유했다.
“목구멍 탄가루 밀어내라 주는 / 돼지고기 / 매달 한근”은 기름기 많은 돼지고기가 목에 낀 탄가루를 씻어준다는 귀납적 플라시보 효과(placebo effect)의 민간요법이었다. 고단한 광부들의 삶의 스토리가 녹아있는 돼지 앞다리살 족살찌개는 지금도 맛집으로 남아있다. 덩달아 “하양 멍멍이들도 / 돼지갈비 뜯”는 운수 좋은 날 “지폐마저 취해 비틀거리는 선술 대폿집”은 밤새 막장에서 망명한 디폴트옵션 이벤트로 화려했다. 그랬었다. 안동에 가서 양반자랑 하지 말고 길을 가다 사장님 하고 부르면 십중팔구 일곱은 뒤돌아보던 점촌에서는 돈 자랑 하지 말라고 했었지 “펄렁거리는 지폐 / 흰눈인 줄 알고 / 마냥 즐”거운 강아지가 만 원짜리 지폐를 물고 다니는 광산촌의 밤이 깊어 가면 시인은 아버지의 봄날을 기억하려 “아버지 / 속옷 / 지린 냄새”에서 아련한 진양조로 잃어버린 시간을 되새김한다. 평생 가족을 위해 밤낮없이 일만 하시던 아버지는 그래도 두 하늘을 이고 사셨던 자랑스러운 막장의 광부였노라고.
------ 이상현(1957~ ) 경북 가은 출생, 묵동야학설립 지도 활동, 함석헌 선생님께 씨알사랑 배움, 2007년 등단, 서대문문학상(2018), 한국시인협회서울시인협회 회원, (사)한국문협 서대문문인협회 회장 시집: 『미소 짓는 씨알』 『밤하늘에 꽃이 핀다』 『살굿빛 광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