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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득용 시인, 문경문학관 이사장 |
| 월봉정(月峯亭)에서
안장수
비산비야 월봉정 만대이서 영강을 내려다 본다
문장대와 새재에서 걸음마 하던 물방울 아해 견탄에서 누렁이 급물살에 밀리듯 국군체육부대 감돌고 호계에서 으르렁 내달리더니 영순 쌍다리 지나며 순해지누나
돈달산은 월인천강 영순보 강물결에 수석 한 점으로 춤추고 강섶 늙고 남루한 자라 한 마리 목을 늘어뜨렸다 움츠린다
월봉정 상산사호 선비들 시경 읊조리고 왜적 침공 한달 만에 문경산하 노략질 때 용사실기 의병으로 용처럼 날랬어라
영순 김용리 황룡 월봉정 도학자 오늘도 당나귀 등을 두드리며 산북 김용리 청룡 퇴경당 만나러 간다
역사 속의 자연과 인물 사실을 객관적으로 서술하여 화자 자신의 주관적 정회를 표현하는 것을 영사시(詠史詩)라 한다. 이 시의 고박(古朴)한 문학적 수사에 시인의 한시 습작 경향이 묻어나지만 늘 일상보다 한 옥타브 위에서 거침이 없어 흥이 나면 곧바로 뜻을 실어내고 뜻이 이르면 구구한 격이나 법을 따지지 않고 일필휘지로 써내려가는 야생기질이 농후하다. “비산비야 월봉정 만대이서 영강을” 내려다보면서 영강의 시원(始原)을 적는다. 월봉정은 문경시 영순면 김용리 269-1 죽곡(竹谷)의 영강변 비산비야(非山非野)에 위치하고 있다. 조선중기 문신 고인계(1564-1647)는 광해군의 폭정이 날로 심해지자 관직을 그만 두었다. 인조반정 이후 성균관전적 예안현감 등을 마지막으로 1636년 병자호란 때 이곳으로 내려와 정자를 짓고 봄이면 도연명의 귀거래사를 읊으며 은거하였다. 지금의 월봉정은 1871년 고종8년 후손들에 의해 재건되었으며 선생은 사후 상주 효곡서원에 배향되었다. 문경에 살면서도 그동안 잘 알지 못하였던 문경의 아름다운 뷰포인트로 선정되어 문경 시민들의 휴식처로 사랑받고 있는 영신숲 공원이 임진왜란 전 고흥운 고인계 부자에 의해 조성되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이다.
시인은 다시 속리산 문장대와 문경새재에서 발원하여 “걸음마 하던 아해”가 “견탄에서 누렁이 급물살”로 국군체육부대를 감돌고 호랑이처럼 “으르렁 내달리”며 감입곡류(嵌入曲流)하는 영강의 포스(force)를 기막힌 의태어와 의성어로 각인시키고 있다. 돈달산은 점촌의 배산이다. 그 돈달산의 월인천강(月印千江)이 “영순보 강물결에 수석 한 점으로 춤”을 춘다니 달은 하늘 높이 떠서 모든 강을 비춘다. 어느 강이라고 해서 더 많이 비추거나 덜 비추는 법이 없어 평등을 세상에 구현하는 희망의 메시지가 아니던가. 그 희망이 무위적으로 이루어낸 아름다운 풍경으로 춤추면 바람과 달빛이 빚은 윤슬은 “강섶 늙고 남루한 자라 한 마리 목을 늘어뜨렸다 움츠”린다니 교교월색(皎皎月色)의 절창이 아닐 수 없다. 하여 시인은 상산사호(商山四皓) 선비들을 빗댄 용사실기(龍蛇實記) 월봉 선생을 과거와 현재로 히스텔링(History+Storytelling)한다. ‘영순 김용리(金龍里)’와 ‘산북 김용리(金龍里)’는 한자의 음과 뜻이 같으며 황룡이 된 월봉이 퇴경당 청용을 만나러 “오늘도 당나귀 등을 두드리며” 호탕스럽게 월봉정을 나서고 있다.
------ 안장수 (1956~ ) 수필가, 경북 상주 출생 2004년 《문예한국》 수필 등단, 수필집 『보금자리』 출간, 《티움지》 《영덕문학》등에 시, 수필게재 현재, 한국문인협회. 경북펜클럽, 가톨릭문인회 회원, 문경문인협회 부회장, 문경새재문학회 사무국장, (사)국학연구회 이사, 문경문학관 상주작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