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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득용 시인, 문경문학관 이사장 |
| 불정(佛井) 이태순 아주 먼 어린 봄날 초파일이 다가오면 이틀이나 걸려 할머니가 다녀오신 운암사 작은 절집을 이순에 만났습니다 지척에 둔 절집을 지나칠 뻔 했습니다 불정이란 마을에서 하룻밤 묵은 덕에 열사흘 달에 비치는 운암사를 보았습니다 여기까지 오느라 빈 마음이 되었습니다 아무도 없는 절집 법당 문을 열지 않고 백작약 그 흰 그늘을 가만히 품었습니다
‘아주’는 과거형 동사 ‘먼’ 앞에 쓰이는 ‘매우’ ‘몹시’의 유의어로 유년의 기억을 소환하는 “어린 봄날”이라는 직유의 생략이 신선하다. “초파일이 다가오면” 부처님께 가족들의 공덕(功德)을 빌며 이틀씩이나 걸려 할머니가 다녔던 “운암사 작은 절집을”시인은 이순(耳順)의 나이가 되어서야 찾았다며 담담하게 회상한다. 마치 이 시는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고향의 자드락길을 다시 보는 듯하다. 운암사(雲巖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직지사의 말사로 신라 문무왕 18년(678)에 의상대사가 창건한 천년고찰이다. 불정 마을 초입에서 약 1.3km 떨어진 작약지맥(芍藥支脈) 재악산(宰嶽山)에 있다. 마을 지명이 된 불정(佛井)은 부처샘을 뜻하는데 재악산은 약수산으로 불릴 만큼 이곳 약수는 물맛이 좋고 효험이 있다고 소문이 났다.
시인은 “지척에 둔 절집을 지나칠 뻔”했다며 일찍이 유학길에 올라 무심하게 고향을 잊고 살아온 지난 세월을 “열사흘 달에 비치는 운암사”를 보면서 어색해한다. ‘절집’은 불자들의 깨달음을 향한 지거수행(止居修行) 처로 설법과 기도의 장소이다. 사찰이나 산사 보다는 그저 절집이라고 부르는 것이 독자들을 편안하게 이끌고 있다. 산자락에 파묻혀 어룽지는 열사흘 달빛에 보일 듯 말 듯한 아담한 운암사 절집이 하룻밤 화두가 되어 기어이 곱게 늙은 절집을 찾는다. 절집 오르는 길은 경건한 마음으로 참된 나를 찾아가는 길이지만 “여기까지 오느라 빈 마음이 되었”다는 시인은 천천히 걸음을 늦추며 세상만물이 다 인연으로 이어져 있다고 끊임없이 자문해 보지만 끝내 “아무도 없는 절집 법당 문을 열지 않고” 부처를 친견하지 않는다. 어쩌면 자신의 삶이 구도자의 길처럼 느껴져 꽃이 아름다운 절집에서 만다라(曼陀羅, maṇḍala)의 즉신성불(卽身成佛)을 고요한 향기로 만난다.
사람들는 누구나 꽃을 좋아한다. 무명(無明)의 절정에서 꽃을 보는 순간 환희에 찬 감동과 감탄이 잠시나마 세상의 온갖 잡념과 망상을 사라지게 하기 때문이다. 꽃의 화려함이나 아름다움은 내 자신의 몫이 아니라 자연과 불심이 빚어내는 은혜로움이 아니던가. 시인은 꽃이 크고 탐스러워서 ‘함박꽃’이라고도 불리는 화사한 순백의 “백작약 그 흰 그늘을 가만히 품”는다. 하심(下心)으로 묵언 정진하는 운암사의 6월이 정갈한 시어로 합장한다.
------ 이태순 시인, 경북 문경 출생, 2005년 《농민신문》 신춘문예 당선, 오늘의시조시인상, 중앙시조대상 신인상, 오늘의시조문학상, 시조집 『경건한 집』, 『 따뜻한 혀』, 『한 끼의 시』, 현대시조100인선 『북장을 지나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