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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권득용 시인의 「문경을 쓰고 문경을 읽다」 53


김재용 기자 / jaeyong999@daum.net입력 : 2023년 05월 03일
↑↑ 권득용문경문학관 이사장


한두레마을 염소 이야기

김욱진


초등학교 때 나는 염소 동아리 반장을 한 적 있다
요즘 말로 하자면 근로 장학생인 셈이다
가정 형편 어려운 나는
장학금 턱으로 어린 암염소 한 마리를 받았다
소 키우는 집이 엄청 부러웠던 그 시절
학교만 갔다 오면
나는 염소 고삐 잡고 졸졸 따라다니며
허기진 배를 채웠다 
그 염소가 자라 이듬해 새끼 두 마리를 낳았다
그 중 수놈은 팔아 중학교 입학금 마련하고
암놈은 건넛집 할머니랑 사는 여자아이에게 분양했다
희망 사다리 오른 그 아이도
어미 염소 되도록 길러 새끼 낳으면
릴레이식으로 건네주는 염소 동아리
염소 한 마리가 새끼를 낳고
그 새끼가 또 새끼 낳고 낳아
육십여 호 되는 한두레마을은 
어느새 염소 한 마리 없는 집이 없었다 
뿔 맞대고 티격태격하던 이웃들
염소 교배시킨 인연으로 부부 되고 사돈 맺는
고삐 풀린 그런 날 더러 있었는데
외박 나온 염소들도 마냥
하늘땅 치받으며 히죽히죽 웃기만 했다


문학은 개인의 체험을 서술(Narration)에서 묘사(Description)로 전환시킨 직서묘사(直敍描寫)의 기록을 구체화시키는 경험적 시상(詩想)이 시의 종자(種子)가 된다. 그러므로 사물과 현상의 기억이 정지된 화면에서 보여지는 것이 아니라 쓰면서 읽혀지다가 다시 투시의 돋보기로 관찰하며 ‘작가의 세계를 보는’ 일이 아니겠는가.

시인에게는 문학의 향기가 청신(淸新)하다. 이른 아침 숲속의 시어들이 신록으로 한편의 다큐를 쓰고 있다. 가난했던 시골소년은 “염소동아리 반장”을 맡아 "염소고삐 잡고 졸졸 따라 다니며 허기진 배를 채”웠다. 어느새 어미가 된 염소가 새끼를 낳아 “수놈은 팔아 중학교 입학금을 마련하고/ 암놈은 건넛집 할머니랑 사는 여자아이에게 분양했다”는 그 여자아이는 아직도 화자의 기억 속에 설렘으로 남았을까. 나이가 들어도 초등학교 동창생의 이름을 부르는데 왜 하필 익명의 대명사를 차용했을까. 그리움의 유효기간이 지나지 않은 가슴 심쿵한 일이라도 있는 걸까. 독자로 하여금 궁금증을 유발하는 유니크(Unique)한 스킬이 아닐 수 없다. 새마을운동이 시작된 1970년대 근면 자조 협동은 그 시절의 키워드로 농촌 구석구석까지 새마을노래가 울려퍼지고 “릴레이식으로 건네주는 염소동아리” 희망의 사다리에 동승한 그 소녀와의 투명한 추억들이 동심(童心)의 경계를 지우고 있다.

‘한두레’는 넓은 들을 지칭한다. 시인이 태어난 문경시 산북면 대상2리 아랫 한두리 지보실(知保室) 마을은 ‘입향조 임학선의 후손들이 자손들이 번성하고 부귀영화를 누리면서 마을을 잘 보전’하라는 뜻이 담겨있다. “육십여호 되는 한두레 마을은/ 어느새 염소 한 마리 없는 집이 없”게 된 것을 두고 “염소 교배시킨 인연으로 부부되고 사돈 맺는/ 고삐 풀린 그런 날 더러 있었”다는 짝짓기는 마을의 기쁨이고 경사였다. 사랑의 본능적 행위를 위해 외박 나온 염소들이 마냥 좋아서 “하늘 땅 치받으며 히죽히죽 웃기만” 한다니 유머스런 익살과 해학의 절정에 ㅋㅋ를 금할 수 없다. 평생을 정직하게 교단에 섰던 시인이 유년의 가난을 슬픔이 아니라 긍정이라는 희망의 씨앗으로 발아시킨 어린시절 행복채널을 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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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욱진 시인, 경북 문경 출생
경북대 사회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문학》 등단(2003년), 시집 『비슬산 사계』 『행복채널』 『참, 조용한 혁명』 『수상한 시국』, 2020년 아르코문학창작지원금 수혜, 제8회 박종화문학상(2022), 제5회 김명배문학상(2022), 대구달성문인협회 회장 역임
김재용 기자 / jaeyong999@daum.net입력 : 2023년 05월 0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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