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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권득용 시인의 「문경을 쓰고 문경을 읽다」 44


김재용 기자 / jaeyong999@daum.net입력 : 2023년 02월 27일
↑↑ 권득용 시인, 문경문학관 관장


돈달산행

                                        권갑하

어째 마음 한 구석 하릴없이 무너질 때는
저자로 가는 발걸음 잠시 접어두고
낯익은 골목길 돌아 돈달산을 오르자

마음 앞서는 길에 무슨 짐이 필요하랴
가슴에 와 부서지는 싱그러운 눈빛들
한길로 목청 돋우며 온몸으로 올라야지

땀으로 다가선 하늘 굽어보는 영신 들판
수석도 영강 지나며 이름 하날 챙기듯이
사는 일 굽이치는 일 다 하늘에 닿아 있네

저 들 한 톨 알찬 벼 알로 영글고 싶다
길은 멀어도 날은 저물다 밝아오는 것
마음 속 별 헤아리며 돈달산을 오르자



좋은 시의 스펙트럼은 다양하지만 무엇보다도 쉽게 읽혀져야 한다는 명제의 속성은 참이어야한다. 원래 시조는 시절가조(時節歌調)로 문학의 갈래가 아니라 음악 곡조의 명칭이었지만 현존하는 우리 고유의 정형시로 정착되었다. 이 시조는 꾸밈이나 화장기 없는 민낯으로 마치 건강식인 보리밥 한상을 차린 것처럼 소박하게 다가온다. 중국의 기산영수(箕山潁水)에 견주어 현인달사(賢人達士)의 은거지로 명명된 돈달산(遯達山, 273.3m)은 이름이 널리 알려진 명산은 아니지만 점촌의 배산(背山)이다. 아무 때고 심심파적 바람을 쐬고 싶거나 기분이 껄적지근할 때는 산책하듯이 그냥 오르면 된다. 시인 또한“어째 마음 한 구석 하릴없이 무너질 때는/ 저자로 가는 발걸음 잠시 접어두고” 돈달산에 오르자는 다정한 권유가 우리를 편안하게 이끈다.

맹자는 ‘옳고 그름을 판별하는 시비지심(是非之心)이 지혜의 출발이고 남을 긍휼이 여길 줄 아는 측은지심(惻隱之心)이 인(仁)의 실천’이라고 했다. 하여 “마음 앞서는 길에 무슨 짐이 필요”할 것이며, “온몸으로 올라야”만 하늘도 저만치 다가서고 풍요로운 “영신들판”과 “영강 지나며 이름 하날 챙기”는 수석을 만난다는 시인은 이해타산을 따지지 않는 불계공졸(不計工拙)을 보여준다. 그러나 작금(昨今)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사람들이 영악해졌다고 해야 하나. 매사에 자신에게 유리한 시간과 공간에 따라 합리적 입장을 취하는 지혜로운 자들로 넘쳐난다. 그럼에도 시인은 개의치 않고 “사는 일 굽이치는 일 다 하늘에 닿아” 있다며 돈달산에서 무위자연(無爲自然)이면 무위이화(無爲而化)로 “한 톨 알찬 벼 알로” 영글었으면 한다.

살아보니 우리는 이 세상에 ‘일’하러 온 것도 ‘성공’하려고 온 것도 아니다. 그저 삶 자체가 수단이 아니라 삶의 목적임을 깨닫고 하늘이 내려준 그 삶에 감사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일까. 시인은 마침내 “길은 멀어도 날은 저물다 밝아”온다는 세상의 진리를 일깨우는 경구(警句)로 “마음 속 별 하나 헤아리”는 장자의 소요유(逍遙遊)를 화두로 던지고 있다. 그대 바쁜 세상에 좀 천천히 쉬어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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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갑하 (1958~ ) 시인, 문학콘텐츠학 박사, 문경 출생
1992년 <조선일보>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
농민신문사 논설위원, (사)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문경아리랑문학관 개관,
중앙시조 대상(2011), 김상옥백자예술상 본상(2021) 외 다수
저서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단 하루의 사랑을 위해 천년을 기다릴 수 있다면』 『겨울 발해』 『누이감자』 외
김재용 기자 / jaeyong999@daum.net입력 : 2023년 02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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