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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득용 시인, 문경문학관 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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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발 걷기 하다 만난 애인들
김다솜
숨겨둔 애인을 만난다면 이렇게 설레일까요 이웃사람들은 내가 애인 없는 줄 알아요 애인을 보여주거나 자랑한 적 없거든요 앞으로 내 애인 보여준다면 논두렁 지나다 독사 만나듯 놀랄 눈동자를 생각하면서 그 길을 걸었어요 어디 그런 천국이 있을까요 혼자면 어때요 꼭 둘 셋 가야 하나요 조용히 혼자 오라고 문경새재 옛길이 손짓 했어요
가끔 보폭들하고 함께 걸어요 신나게 걷는데 새들이 모여서 웅성거려요 둥지에서 떨어진 새끼 한 마리 스스로 죽기야 하겠어요 날지 못하여 버린 새끼를 살려 보겠다고 애인들이 과자부스러기를 주고 물을 주고 둥지 옆에 올려줬지만 그것도 잠시, 다시 흙 위에 떨어진 푸둥새 한 마리 보았지요.
그리고 자신의 한 컷을 찍는 주연이자 조연도 보았어요 리허설 하는 말과 가면들도 보았지요 2관문에 흐르는 약수물 맛있다며 몇 달 후 있을 천도제 예약했다는 암 환자도 만났어요 퇴직하고 공로연수 온 사람들도 만나고 멋쟁이 노부부를 만나 인증사진도 찍어드렸습니다
유모차를 끌고 가는 부부도 보았고 내 애인 자랑하고 싶은 데 아직 자랑할 시간이 없네요 문경새재를 혼자이면서 함께 맨발로 걷는 락樂, 후~후 다정하고 편안한 내 사랑 애인 詩와 옛길에서.
자크베르트랑(1807~1841)의 「밤의 가스파르(Gaspard de le nuit)」에서 시작된 산문시는 보들레르를 비롯한 폴발레리, 폴포르 등 형이상적 문예사조로 표현되는 ‘예술을 위한 예술’의 상징파 시인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서정시의 특질을 모두 담고 있으면서 시의 형식상 운율, 리듬, 계조 등이 서사시 또는 자유시보다 내재율의 조화가 더 자유롭다. 그런데 이 시는 산문시이면서도 화자가 유리한 대로 상상하는 가정법(假定法)이 심상치 않다. 애인이라는 말로 은근슬쩍 유혹하여 ‘~만난다면’ ‘~보여준다면’의 조건절이 독자들로 하여금 침울 꼴깍거리게 한다.
“숨겨둔 애인을 만난다면 이렇게 설레일까요” 또는 “앞으로 내 애인 보여준다면 논두렁 지나다 독사 만나듯 놀란 눈동자를 생각하면서” 맨발로 새재를 걷는 행복이 애인으로 치환되지만 사랑의 속성은 참으로 묘(妙)하다. 우스갯소리로 요즘 세상에 애인 없는 사람은 7급 장애인이라며 사람들은 아무도 눈치 못 챌 비밀사랑 하나쯤을 저마다 꿈꾸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쯤에서 애인은 속세를 떠나고 사랑이 그리는 내면의 무늬들은 길 위의 인문학이 된다. 그래서일까. 함께 보폭을 맞추며 걷는 사람들이 푸둥새의 화두가 되어 “과자 부스러기를 주고 물을 주고 둥지 옆에 올려”주며 어린 생명의 소중함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자연에서는 주연과 조연이 따로 없다. 각색 없는 드라마가 펼쳐지지만 인간의 이타적 행위에는 ‘리허설 하는 말과 가면’들이 보여진다. 그것은 이성적 행위에 사랑을 덧씌우는 일로 우리 몸에 기억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듣는 것보다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시인은 맨발로 새재를 걸으면서 “어디 그런 천국이 있을까요”라며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사인여천(事人如天)으로 경청하고 있다. 경청이란 자신의 시간을 상대에게 선물하는 것이 아닌가. 공감의 인연을 피드백하다 보니 아뿔싸 “내 애인 자랑하고 싶은데 아직 자랑할 시간이 없”다며 서둘러 “다정하고 편안한 내 사랑 애인 시(詩)와 옛길”을 커튼콜하고 있다.
------ 김다솜 시인 문경 출생. 리토피아 등단(2015년), 시집 「나를 두고 나를 찾다」 「저 우주적 도둑을 잡다」 제9회 경북여성백일장 차상, 제10회 경북여성문학상, 한국시인협회 상주문협 경북여성문학 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