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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권득용 시인의 「문경을 쓰고 문경을 읽다」 31


김재용 기자 / jaeyong999@daum.net입력 : 2022년 11월 16일
↑↑ 권득용 시인, 문경문학관 관장

문경도리실길        
                      이성남
 
석탄산업 영욕의 세월
벗어나
산자수명 옛 정취
조그만 동네

봄 내내 천둥치듯
개골개골 짖어대는
무논이 농부를 거느리는
논두렁길

수수억만년 그랬을
암벽 봉우리
희양산 계곡은
양산천 이루고

마을 품은 옥녀봉
굽이굽이 강물 따라
느티나무 정자로
도리실길 열었지


실개천이 마을을 돌아간다는 도리실은 가은읍 하괴리(下槐里)로 느티나무가 있는 아랫동네를 일컫는다. 느티나무는 성장할수록 늦게 티(모양)가 나는 나무로 정자나무라고도 불린다. 지난가을 시인의 초대로 방문한 앙친정사(仰親精舍)는 선친이 직접 쓰신 글씨로 어버이를 우러러 그리워하는 문학의 집이다. 주황색 능소화와 꾸찌뽕이 어우러진 시화들이 상엽홍어이월화(霜葉紅於二月花)로 걸려 있었다. 함경남도 장진이 고향인 시인이 이곳에 정착한 것은 1948년 은성광업소가 한창 호황일 때였다. 그러나 “석탄산업 영욕의 세월”만큼이나 월남민으로 가난과 불우했던 소녀시절에 출가(出家)를 결심하면서 산전수전의 상처가 켜켜이 옹이처럼 박혀 있다. 하지만 이제 팔순이 넘은 노시인의 한(恨)스런 상처는 시(詩)적 동반자로 사는 까닭이 되었다.

이 시의 원형이정(元亨利貞)이 된 도리실은 시인의 독백이 시가 되고 수필이 되어 끝내 함께 가야할 문학의 화수분(河水盆)으로 “산자수명 옛 정취”로 향기롭다. “봄 내내 천둥 치듯”유년의 세월은 소낙비 내리는 여름이 아니라 계절을 앞당겨 자신의 인생 처지를 담담하게 되새기는 화자의 아픔이 눈물로 묻어나지만 “무논이 농부를 거느리는”질퍽한 농사꾼이 되어 논두렁길에서 풍작의 시를 쓰고 있다. 도리실은 지금까지 만나온 시인의 운명이었던 시공을 뛰어넘어 세월의 뒤안길에서 마주하는 숙명의 백허그(back hug)가 되고 있다.

희양산(999.1m) 구산선문(九山禪門)은 도(道)가 높아 지증대사가 창건한 고찰 봉암사(헌강왕 5년, 879)가 있다. 고운 최치원이 새긴 야유암(夜遊巖)과 백운대의 고산유수명월청풍(高山流水明月淸風)이 “양산천 이루고/ 마을 품은 옥녀봉”아래 “느티나무 정자로/ 도리실길 열었”다는 그곳에는 ‘나는 가진 것 없어도 슬퍼하지 않습니다’라며 평생을 문학소녀로 살아가는 이성남 시인이 순정한 섬월(纖月)로 뜨고 있다.


------
이성남 시인, 수필가(1941~ ) 함경남도 장진 출생. 문경 거주.
문학시대 등단(1990), 시대시인 회장 역임
(사)국제펜문학, 문경문협 회원, (사)현대시협, 농민문학, (사)국학연구회 이사
한맥문학상(1996), 불교문협상(1996), 농민문학작가상(2013) 외 다수
시집 󰡔귀촌일기󰡕(2019) 외 4권, 에세이 󰡔사는 까닭󰡕(2020)

김재용 기자 / jaeyong999@daum.net입력 : 2022년 11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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