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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득용 시인, 문경문학관 관장 |
영강에서 12 -가시랑 다리 정 형 석
멀리서 보면 장난감 같다 채탄을 싣고 가는 유년의 어느 날에는 끈 매어 내달리고 싶던 가시랑 가시랑 차타고 오늘 밤도 건너갈까
선산부 황씨 아저씨 진폐증으로 가시랑대고 대폿집 욕쟁이 할매 외상값으로 가시랑거린 가시랑 가시랑 다리 꿈결에도 일렁댔지
복작댔던 도탄교 너머 미루나무 멀쑥하고 흙먼지 이는 왕릉장터 잿비둘기 소리 흥건할 때 가시랑 가시 가시랑 이명인 듯 들려온다. *가시랑 다리는 문경 가은 소재 은성교 옛 이름임
시인의 유년이 고향이라는 모태적 공간으로 회귀하는 원형질에는 영강(潁江)이 있다. 영강은 기산영수(箕山潁水)에서 유래되었지만 속리산 문장대에서 발원하여 감입곡류하며 여러 지천을 만나 기암괴석과 뛰어난 경치를 만들고 낙동강으로 흘러든다. 그 강에서 건져올리는 시어(詩語)들이 생경하지 않고 오래된 익숙함으로 다가오는 것은 시간에 대한 겸허함이 성찰의 길로 흐르는 유년의 풍경 탓일 게다. 하여 시인은 존재의 참됨이 깃든 곳에서 유장함으로 유년시절의 초상화를 그려내고 있다.
19세기 독일의 생물학자 에른스트 헤켈(Ernst Haeckel, 1834~1919)은 다윈의 진화론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개체발생은 그 종(種) 또는 계통발생의 여러 발생 단계의 단축된 반복이라는 ‘발생반복설’을 주장하였다. 물론 지금은 과학의 영역에 머무르지 않고 생물학적 관점의 도덕적인 부분에서 리스크를 주장하지만 시의 창작 또한 여전히 그와 유사하다. 정형석 시인의 영강의 사계 연작시 33편이 마치 무성생식(無性生殖)으로 진화하여 때로는 순박함과 사실적인 화법으로 반짝이는 사금파리의 빛이 되고 있다.
시인은 장난감 같은 가시랑차가 은성광업소에서 가은역으로 쉴새없이 탄을 실어나르던 건조한 실루엣의 일상을 바라보다 “끈 매어 내달리고 싶”다던 유년의 꿈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가시랑차 타”는 오늘밤은 현재진행형이 되고 있다. 은성광업소 교대근무 시간 광부들의 애환이 넘치는 곳은 역시 대포집이었다. “선산부 황씨 아저씨 진폐증으로 가시랑”대고 “욕쟁이할매 외상값으로 가시랑 거”리는 도탄교 넘어 탄광촌 풍경을 온통 가시랑으로 이미지화시키는 시적극대화가 하트를 접으며 영강으로 흘러간다. 그래도 “흙먼지 이는 왕릉장터 잿비둘기 소리 흥건”해지면 회귀의 욕망 더욱 커지고 기어이 우리 생(生)에 풍화되어 이명(耳鳴)의 소리로 남을 유년의 추억들이 외부소리에 귀를 막고 “이명인 듯 들려”오는 비청각적인 가시랑차가 어린시절 고향의 주파수가 되고 있다.
------ 정형석 시인 (1960~ ) 시인, 소설가. 경북 문경 출생. 고려대 인문대학원 문예창작전공 전국공무원문예대전 시조부문 입상(2001), <시조문학> 등단(2004) 나래시조 문학상(2015),월간 <조선문학>, <문예사조> 소설등단(2020) 한국시조시인협회, 한국소설가협회, 오늘의시조시인회의, 나래시조 회원 충북시조시인협회 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