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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득용 시인, 문경문학관 관장
점촌역
엄재국
가야할 곳이 있다
철로를 달렸던 건 기차와 석탄이 아니라 숨 가쁘게 살아온 사람들이었던 과일 가득 담은 가방의 자크를 연신 열고 닫아 보듯 마음 설레던 점촌역
멀리 북으로 남으로 떠났던, 또 거기서 몰려왔던 사람들 누군가의 청춘이, 일생이 쓰러지고 일어섰던 기차는, 뒤돌아 볼 수 없이 쉬었다 간다
두 눈 속에 석탄빛 불꽃이 일었던 가슴속 광부여 농부여, 상처받았지만 병들지 않아 떠나는 자가 입술 깨무는 곳
먼 데를 떠돌던 기차여
지금은, 영강 마주 안고 돈달산 어깨위에 동이 틀 무렵 기적 울지 않아도 네가 온 줄 알겠다
네 환한 이마가 우리의 꿈인 줄 알겠다
점촌역은 곧 100년이 된다. 1924년 경북선의 보통역으로 영업을 시작 1955년 문경선이 개통되면서 호황을 누렸지만 40여 개나 되었던 탄광들이 폐광되면서 문경선은 산업철도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고 1995년 폐선되고 말았다. 한때는 인구가 16만 명이 넘고 ‘개도 만원짜리를 물고 다녔다’라는 우스갯소리로 흥청거리던 점촌역은 지금 하루 이용객이 100여명에 불과하다. 이제는 마음을 놓아도 좋을 가물가물한 첫사랑의 여백을 보는 듯한 한적한 풍경이 평온스러운 점촌역이 본래의 교통기능과 역할을 상실하였지만 존재자체만으로도 인문학의 창고가 되어 스토리텔링으로 문학의 빗장을 열고 있다.
한 번도 고향을 떠난 적 없는 시인은“철로를 달렸던 건 기차와 석탄”뿐만 아니라 “숨가쁘게 살아온 사람”들을 반추하고 있다. 늘 떠나고 찾아오는 사람들로 넘쳐나 붐비던 점촌역은 모든 이들에게“마음 설레던”플랫폼이었다. 하여“누군가의 청춘이, 인생이 쓰러지고 일어섰”지만 “기차는, 뒤돌아볼 수 없”는 현재와 미래진행형의 자동사로 숨가쁜 호흡을 몰아쉰다. 잠시라도 물리적 시간을 허투루 지운 적 없는 시인은 우리가 추억으로 경험했던 시간의 핀조명을 직선적 언어로 길어올리고 있다.
그랬었다. 통학열차 안에서 만났던 여학생의 다정한 눈빛만으로도 싱그러웠던 청춘을 꿈꾸었고 오일장을 가기 위해 북적댔을 남루한 영혼들이 낭만의 언어 여행을 떠나던 곳이 아니던가. 다른 일반 역과는 달리 “두눈 속에 석탄빛 불꽃이 일었던” 삶의 무늬들이 “병들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시인의 처방전은 “입술을 깨”물던 점촌역 기차를 소환하고 있다. 얼마를 흘러가야 하는 세월인가. 점촌의 진산인 “돈달산 어깨 위에 동이 틀 무렵” 울리던 기적소리는 사라졌지만 아직 그리움만으로도 우리의 꿈이었음을 담담한 언어로 빚고 있다. 엄재국 시인의 이 시는 현상공모 당선작으로 2009년 9월 1일 점촌역에 시비로 제막되었다.
------ 엄재국 시인 (1960~ ) 경북 문경 출생. 2001년 <현대시학> 등단. 시집 [정비공장 장미꽃](2006, 우수도서 선정), [나비의 방](2016) 시와 조각과 사진을 결합시킨 'Art Poem'을 <애지>에 연재 문경문인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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