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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권득용 시인의 「문경을 쓰고 문경을 읽다」 15

권득용 시인, 문경문학관 관장
이동재 기자 / press@mgtimes.co.kr입력 : 2022년 06월 27일
流轉하는 아버지

                                                         권운지

긴긴 협곡을 거쳐야 그곳에 닿는다. 폐광의 고요 속에 아버지의 수많은 전생을 만난다. 아버지는 옛집 앞 환한 벚꽃 나무 아래서 나를 향해 웃고 계신다. 검푸른 석탄을 가득 실은 가시랑차가 갱도를 나와 아버지와 내 앞을 지 나가고 있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 그해 여름 땅이 울리고 강물이 붉도록 아버지는 앓았다. 신열을 참으며 긴긴 행렬을 따라가며 돌아보고 돌아보던 아버지를 놓쳤으리라. 한번도 만난 적 없는 아버지를 찾아 간다. 아버지도 수없이 이 길을 찾아왔을 터지만 다리 위에서 어깨를 스쳐도 번번이 알아보지 못했다. 아버지를 증언하던 사람들도 모두 떠났으므로 이제 가시랑차와 아버지를 저 아득한 지층 속에 묻노니 끝나지 않는 생의 어느 봄날 검푸른 탄이 된 아버지 가시랑차 타고 오시면 못 다한 이야기 밤새 나누리라.



시인은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제문(祭文)을 처연히 쓰고 있다. 긴긴 협곡을 거쳐 “폐광의 고요 속에 아버지의 수많은 전생을 만”나는 그리움들이 아버지의 메타포가 된다. 그리하여 한번도 만난 적이 없는 아버지가 나를 향해 웃고 계시고 삼계육도(三界六道)의 윤회 따라 갱도를 나온 가시랑차가 내 앞을 또 지나가고 있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 그해 여름 땅이 울리”는 6.25는 이념이 세상을 둘로 가른 전쟁이었고 좌우익의 혼돈이 “긴긴 행렬을 따라가며 돌아보고 돌아보던 아버지를 놓쳤으리라”는 가족사의 비극은 7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끝나지 않았지만 이제 아버지를 증언하던 모든 사람들이 떠났다. 생사인과가 끊임없이 이리저리 떠도는 아버지의 유전(流轉)만이 엊그제 막 캐낸 검푸른 탄으로 문장이 되고 있다.

유복자의 아픔을 절제하며 ‘아버지의 부재’와 ‘불멸의 아버지’를 기리는 시인의 문장은 치밀하고 섬세하다. 성색정경(聲色情境) 수려함과 미묘함의 저울질로 울림이 가득하다. 자신을 비추면서도 그리움의 크기에 흔들리지 않는다. 어머니의 한 맺힌 청춘에서 실종되었던 은성광업소의 스물셋 아버지를 오십년도 훨씬 지나 어머니와 합장한 신위 앞에 시인이 만든 그리움의 날개를 이제는 접을 수 있을까.

어쩌면 우리는 평생 삶을 캐는 광부들인지도 모른다. 가은의 은성광업소는 일제치하인 1938년에 개광되었으나 1994년 9월 폐광되었다. 그리고 1999년 5월 20일 문경석탄박물관으로 다시 개관되었다. 한때 문경은 우리나라 석탄 소비량의 20%를 담당하였다. 이 작품은 문경을 대표하는 시로 전국의 시낭송가들에게 애송되며 많은 독자들로부터 사랑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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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운지 시인 (1951~ ) 본명, 권점출. 경북 문경 출생.
영남대학교 대학원 졸업. 1982년 <현대시학> 등단
대구광역시교육청 장학사, 장학관 역임, 대구시인협회상 수상
시집 <소작인의 가을> <빈집의 나날> <갈라파고스> <그가 오기 전에 날이 저물었네>



이동재 기자 / press@mgtimes.co.kr입력 : 2022년 06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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