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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권득용 시인의 「문경을 쓰고 문경을 읽다」 11

권득용 시인, 문경문학관 관장
이동재 기자 / press@mgtimes.co.kr입력 : 2022년 05월 15일
          여우목고개
                                                     이 영 옥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혼자 가는 길
때로는 너무 아파서
허방을 걷다
국사봉 들머리까지
5월이 사정(射精)한 연초록에 홀려
으스러지게 껴안은 그리움이
발톱을 세웁니다

소식 끊고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게
허물없이 사라지고 싶은 날
숨어 살고픈 여우목고개

순교하듯
그곳에 마음자리 내려놓고
끝내 잊었다던
그대 기다릴까


권득용 시인, 문경문학관 관장



김주영은 그의 소설 「객주」에서 ‘이경(二更)이나 되었을까. 신선봉의 협곡을 내려쏟는 바람 사이에 간간히 여우 울음소리가 섞여 들려왔다.’며 임오군란이 일어나기 이태 전 쇠살주(소 매매에 흥정을 붙이는 사람)인 조성준이 천봉삼과 최돌이와 깍정이 몇 사람을 데리고 문경새재로 도망친 아내를 찾아나서며 여우목고개를 적고 있다. 백두대간 황장산과 대미산이 만나는 산평선(山平線)의 하트 여우목고개는 해발 620m이다.

‘혼자 가는 길’은 부대끼며 살아가는 우리 일상의 삶이다. 시인은 도시의 삶을 형상화하면서 ‘허방을 걷’는 길임을 자각한다. 귀가 먹먹하고 아우성치는 현실이 분주한 까닭을 탐찰(探察)해보지만 ‘때로는 너무 아파서’미망의 어지럼에 취(醉)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고 독백한다. 그러나 자연의 경계에서 ‘5월이 사정(射精)한 연초록에 홀려’끝내 순장하리라 마음먹었던 옛사랑을 끄집어낸다. 그 사랑이 시인의 천착이 되고 있다. ‘으스러지게 껴안은 그리움이/ 발톱을 세’우다니 페디큐어(Pedicure)의 매혹적인 그리움이 사랑의 변주곡이 된다. 그리하여 시인은 처음 넘는 여우목고개에서 허물없이 사라지고 싶은 날 ‘순교하듯/ 그곳에 마음자리 내려놓고/ 끝내 잊었다던/ 그대 기다릴까’라며 그냥 잊혀지는 애꿎은 이별의 사랑이 아니라 사별(死別)뿐인 정한(情恨)으로 사랑의 순교를 꿈꾼다.

병인박해(1866) 때 천주교 신자 30여 명이 참수당한 이곳은 1984년 교황 요한바오로 2세가 성인으로 시성하면서 여우목성지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해월 최시형(1827~1898)이 새로운 세상을 꿈꾸던 인내천(人乃天) 혁명의 길이기도 하다. 시인은 이곳 성지를 알고 왔었을까. 아니면 우연이었을까.


* 이영옥 시인 (1968~ ) 충남 논산 출생.
시집 『날마다 날고 싶다』 외 6권, 대전문협부회장, 대전여성문학회장,
대전문학상, 하이트진로문학상 외 다수, 현재 <도서출판이든북>대표


이동재 기자 / press@mgtimes.co.kr입력 : 2022년 05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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