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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마당> 함창 고녕가야22 - 옥여(玉輿)봉과 사(死)의 찬미
지정 스님(봉천사 주지)
이동재 기자 / press@mgtimes.co.kr 입력 : 2021년 10월 17일
영강 체육공원에서 자전거길을 따라 함창쪽으로 가다보면 좌측으로 영강이 흐르고 오른편으로는 함창평야가 펼쳐진다.
점촌에 오랫동안 연고를 두고 있어도 이 길을 이용하는 경우는 참 드물다. 다소 낯설다는 생각을 하면서 승용차로 천천히 10여분 가면 함창읍 덕통리가 나온다. 마을 오른쪽으로 낙타 봉우리처럼 불룩한 두 봉우리가 나타나는데 그 하나가 머리뫼이며 또 하나는 옥여봉(玉輿峰)이다.
오늘은 산정에 안장되어 있는 안동김공 김병욱 옹의 산소를 방문하러 나선 것이다. 옥여(玉輿)봉은 왕이 타는 수레를 뜻하는 봉우리로 제왕의 권력을 상징한다. 누구도 관심두지 않는 옥려봉과 머리뫼 머리돌은 고녕가야의 유산임이 틀림없다.
지난 여름 둔굴제 김부일 선생의 얘기를 듣고 권창희 흥농석재 사장과 답사 차 올라간 후로 벌써 다섯 번 째 걸음을 하는 셈이다. 덕통리 마을회관에 차를 세워두고 마을뒷산으로 난 길을 따라 10여분 올라가면 낯선 비석이 나온다.
100여 년 전에 만든 비석으로 우리지방의 형태와는 달리 일본풍과 전라도 양식이 혼재된 비석으로 ′안동김씨 세장지′라고 적혀있다. 이 마을에 사는 김재식 전 함창초등학교장 선생의 전언에 따르면 원래 옥여봉은 하늘에 제사지내는 신성한 지역으로 일반무덤을 쓸 수 없는 곳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안동김씨들의 세도에 못 이겨 제단을 옆으로 물리고 산정에 무덤을 쓰도록 허락했다는 것이다.
세장지(世葬地) 비석 뒤로 5분쯤 더 올라가면 옥여봉 정상이 나오며 잘 다듬어진 묘소와 300여 평 가량의 넓은광장이 나온다. 무척 화려한 분묘로 여느 왕릉 못지않은 규모로 지어져 있다. 묘지주위는 잡목과 잡초로 인해 어수선하지만 묘지 앞에 세워진 문인석과 묘비석만은 여전히 웅장한 자태를 간직하고 있다.
비석에는 사방으로 빽빽이 한문체로 작성된 집안내력과 사연들을 기록하고 있다. 묘주는 안동김씨 삼당공파 김병욱으로 그 아들은 초정 김성규이며 그 손자는 김우진 김익진 김철진 등이다. 문경 동포(東浦)출신으로 조상대대로 이곳에 살았으며 늦게 벼슬길에 올라 연풍현감을 지냈다고 전한다.
문경의 동포(東浦)가 어디인지 수소문해도 아는 이 없고 단지 포내, 금포, 백포를 점치는 이가 있을 뿐이다. 어느 따뜻한 봄날 김병욱은 낮잠을 자다가 황해바다의 파도가 넘실대면서 집을 덮치는데 그 파도가 모두 황금으로 변하는 꿈을 꾸었다. 잠에서 깨어난 김병옥은 마침 마당청소를 하는 마나님과 합방하여 생산한 이가 바로 호남거부가 된 김성규다.
당시 조정의 실세인 안동김씨 세도가의 한사람인 해사(海沙) 김성근(金性根)이 김병욱의 숙질로서 그를 서울로 불러올렸다고 한다. 당시 김성근은 탁지부 대신을 지내면서 지금 서울 인사동 ′박영효 집′으로 알려진 고기와 집이 그가 살던 집이었다. 해사 김성근은 평생 나무아미타불을 염했으며 은퇴 후 광주에 내려가서는 염불당을 짓고 염불과 참선에 몰두했다고 전한다.
둔굴제 김부일 선생의 설명에 따르면 비석에 등장하는 초정 김성규와 그의 아들 김우진은 우리가 충분히 기억해 낼 수 있는 인물들이다. 김성규는 20세까지 고향인 문경에서 살았으며 그 후 과거에 급제하고 서양학문을 공부했다고 전한다.
고종의 밀사로 유럽각국을 방문했으며 조선말 서구근대화에 많은 공을 세운 지식인이다. 그는 전라도 장성군수와 목포 무안 감리직책을 수행했으며 당대 2만석의 갑부로 호남의 대표적 지주가 되었다. 김성규는 동학혁명과도 관련이 깊어 동학의 실력자 김계남에게 포박당한 적이 있으며 나중에는 김계남을 교수형에 처한 장본인이다.
그의 아들 김우진은 ′사의 찬미′로 인기를 구가하던 당대 여류작가인 윤심덕과 현해탄에 투신 동반자살한 비운의 남자로 널리 각인된 인물이다. 루마니아 민요곡에다 김우진이 작사한 ′사의찬미′로 큰 인기를 구가하던 성악가 윤심덕과의 파문은 세상에 큰 충격을 던졌다. 그 사건은 단순한 청춘남녀의 애정과 죽음을 뛰어넘는 시대의 아픔을 자아내는 민족의 아픈 편린이었다.
윤심덕은 평양출신으로 한 번의 이혼경력이 있는 동경유학 출신 성악가다. 김우진은 목포에서 결혼하여 자식을 둔 가장으로 인습에 묶여있는 사회와 예술가로서 현실한계에 봉착했던 것이다. 지식인의 책무를 외면하고 불륜의 방탕에서 젊은 생을 포기했다는 사회적 지탄이 그들에게 쏟아졌다. 김우진은 요절했지만 그의 아들 중 한명은 서울대학교 언어학자로 널리 알려진 김방한 교수다.
김우진의 두 동생인 김익진과 김철진은 각각 북경과 동경에 유학했으며 마르크스주의에 심취한 사회주의자가 되어 돌아왔다. 한사람은 나중에 개심하여 천주교에 귀의하여 귀중한 저술들을 많이 남겼다고 전한다. 이들은 모두 문경에 선영을 두고 있지만 문경에서 그들을 기억하는 이는 거의 없다.
구한말 격동기에 겪었을 말 못할 사연들이 어느 가정에서나 없었겠느냐는 막연한 추측을 해 볼뿐이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김병욱의 배우자는 셋이며 김성규의 측실도 그에 못지않았다는 후문이다.
김우진의 손자 되는 김인동 씨가 일 년에 몇 번씩 내려와서 그의 고조부 김병욱 옹의 산소를 돌보고 있다. 김성규와 김우진의 묘지는 전라남도 무안 몰뫼산에 안치되어 있다. 내게 옥여봉의 김병욱 유택과 사의찬미 주인공인 윤심덕과 김우진의 얘기를 전해준 이는 김인동씨와 둔굴제선생 그리고 안동 소산에 적을 둔 안동김씨 일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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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연극계의 유망주로 꼽히던 김우진 | |
이동재 기자 / press@mgtimes.co.kr  입력 : 2021년 10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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