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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마당>함창고녕가야 역사찾기18 - 제악산 신선암

지정 스님(봉천사 주지)
이동재 기자 / press@mgtimes.co.kr입력 : 2021년 07월 06일
고녕가야의 터전인 함창의 진산은 작약산(芍藥山)으로 해발 774m로 함창 서북 방향에 위치하고 있다.

산을 넘어가면 가은읍 수예리가 나오고 산정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진남교가 보이는 어룡산이 나오고 산정에서 좌측으로 가면 농암면 뭉우리재가 나온다. 작약산은 작약꽃처럼 탐스럽게 생겼다는 의미이지만 그전에는 재약산(載藥山), 재악산(宰岳山), 제악산(祭岳山)등으로 불렸다.

재약산은 수많은 기화약초가 자란다는 화엄경의 마이산과 상통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재악산은 위용을 갖춘 우두머리산이라는 의미이고 제악산은 하늘에 재를 올리는 바위산이라는 의미이다. 실제로 제악산 꼭대기에는 위용을 갖춘 거북처럼 생긴 거암이 함창을 내려다보고 있다.

6월 중순 구름 낀 어느 날 권창희 흥농석재 사장과 제악산에 있는 신선암터와 그 옆에 있는 3층석탑의 흔적을 찾아 길을 나섰다. 이십여 년 전까지만 해도 규석광산이 있어서 산중턱까지 비포장의 찻길이 나있다. 오랜 세월 빗물에 파이고 묻혀있던 돌맹이가 드러나서 차가 다니기에는 무리였다.

산 중턱에 차를 세워두고 걸어가기로 했다. 비포장 찻길이 끝난 지점부터는 밀림 속을 헤쳐나가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큰 나무들이 우거진 숲속에는 햇빛이 들어오지 않은 탓에 나무아래는 비교적 숲이 옅어 길은 없어도 걷기에 비교적 수월하다. 한시간 쯤 땀을 흘리고 나니 더운 날씨에 하늘이 빙글빙글 도는 현기증이 일어났다.

올라가는 중에 수십년 된 산삼을 발견하고는 캐려는 일행에게 그냥 자라도록 놔두기로 하고 두발과 두손을 번갈아 뻗으면서 나아갔다. 오소리 굴속에서는 새끼들의 모습이 보이고 바위위에는 커다란 황구렁이가 이상하다는 듯이 우리를 빤히 내려다본다. 올라가는 언덕받이 옆으로는 깨어진 기와파편들이 수없이 널부러져 있다. 그것만 봐도 가까운 지점에 절터가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다리를 다친 적이 있어서인지 권창희 사장은 자꾸 뒤로 쳐지고 내가 먼저 신선암 옛터에 도착했다. 낭떠러지를 기다시피 올라가니 백 평이 못되는 평지가 숲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돌담과 주춧돌 그리고 기와파편들이 보이고 옆에는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우물이 보인다. 뒤로는 30m높이의 바위들이 병풍처럼 4~50m 뻗어있다. 정면으로는 멀리 함창시내와 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야말로 만경창파 일망무제의 경치가 발아래로 펼쳐진다.

아! 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옛 가야인들은 왕국이 내려다보이는 제악산 거북바위 아래 절을 짓고 옛 왕국의 번영을 기원했으리라. 고녕가야가 망한 후에도 그들은 새로 들어선 여러 왕조와 그들 나라의 길상을 염원하면서 수행했으리라. 전생에 아마 나도 이곳에서 정진하지 않았겠는냐는 생각이 드는것도 당연하다. 인적이 끊긴지 수 십 년이 된 폐허에 숲을 헤치고 옛터를 보면서 이토록 감격하는 것도 무슨 깊은 인연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리저리 사진을 찍고 신선암 터 오른쪽으로 희미하게 보이는 짐승들이 다니는 길을 따라 나아갔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신선암에서 오른쪽 백호등을 타고 얼마간 내려가면 탑지(塔址)가 나온다고 했다. 큰 바위 봉우리에도 올라가보고 길게 늘어진 다래덩굴에 매달려보기도 하고 인적이 끊어진 산 능선을 타고 30여분 헤맸다.

마침내 산줄기를 따라 아담한 무덤이 나오는데 얼핏 봐도 예사 터가 아님을 짐작 할 수 있다. 서른 평 남짓한 공간 주위로 아름드리 소나무가 잡목에 치여 곤욕을 치르는 모습이 마음을 아리게 한다. 권창희 사장의 말에 의하면 조상들로부터 들은 얘기라면서 100여 년 전 상주의 권세가가 이 자리에 무덤을 쓰면서 탑을 넘어뜨렸다고 한다. 무덤은 관리가 잘되지 않아서 잔디는 패어지고 산짐승이 훼손했는지 봉분의 절반이 뭉개져 있다.

이 자리에 무덤을 쓰고 난 뒤 10여 년 전 까지만 해도 무너진 탑이 묘지 옆에 넘어진 채로 있었는데 어느 날 규석광산에 드나들던 사람들이 밀반출했다는 것이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살피던 중 다행히 기단석 파편하나가 반대 편 소나무 아래 낙옆 속에 덮혀있는 것이 보였다. 너무 반가워 장갑 낀 손으로 낙엽을 걷어내고 흙을 들어내니 길이가 1m가 넘는 가공한 흔적이 역력한 기단석이 드러났다.

전체 탑은 볼 수 없지만 그래도 천만다행이라는 마음으로 커다란 금덩이 하나를 주운 것 이상의 감회를 느꼈다. 무덤이 있는 원래자리에 다시 서 보니 뒤로는 산 주령이 쭉 내려오고 앞과 좌우로는 만경창파의 봉우리와 들판이 펼쳐져 있다.

지금은 나무가 가려 잘 보이지 않지만 이 자리는 바로 함창의 영고성쇄와 직접적으로 관계가 있는 땅임을 알 수 있겠다. 이곳에 다시 탑을 세운다면 함창의 옛 위용을 회복할 수 있는 기반이 될 것임에 틀림 없으렸다. 위쪽에 있는 신선암과 함께 복원한다면 고녕가야의 옛 영화는 머지않아 재현될 것이다.

약간의 흥분과 상념을 안고 허리춤을 동여매고 산능선 두 개를 넘어 하산하는 중 새로운 돌을 발견했다. 사람의 흔적은 전혀 보이지 않는 멀찍이 떨어진 경사진 자리에 구멍이 패인 판석이 흙과 낙엽을 뒤집어 쓴 채 귀퉁이가 드러나 있다. 얼른 다가가서 흙을 젖히고 낙엽을 긁어내고 보니 한 면이 1.5m는 족히 될 만한 판석이 자태를 드러냈다. 가운데는 사리공이라고 할까 인공적으로 패인 주먹만 한 구멍이 보였다.

권창희 사장과 함께 상기된 채로 영상을 촬영했다. 오늘 우연찮게 재악산에 올라와서 많은 숙제를 가슴에 안고 하산길에 들어섰다. 한편 숙연한 마음으로 이 산이 그냥 산이 아니라 예부터 공들이고 재사 지내던 영산임을 가슴가득 느낀다. 아마 고녕가야 역사도 재악산의 흩어진 석탑이나 신선암처럼 누군가에 의해 파괴되고 무언가에 덮혀 가려져 있음이 분명하다.

고녕가야의 숨겨진 역사가 제악산 위용처럼 우뚝 서는 그 날까지 나는 묵묵히 정진하며 그 길을 걸어가련다.  나무아미타불~

신선암 석탑파편

이동재 기자 / press@mgtimes.co.kr입력 : 2021년 07월 0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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