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 충의사보존회(회장 고영조)는 지난 20일 문경시 가은읍 민지리 출신 도암 신태식 의병장 생가 ‘충의사(忠義祠)’에서 추모제(향사)를 봉행했다.
추모제(향사)는 고영조 보존회장이 초헌, 강용우 전 문경향교전교가 아헌, 후손 신현기씨가 종헌, 김동운 유학이 축관, 홍만부 유학이 집례를 맡았다.
이날 추모제(향사)에는 보존회 회원과 문경시내 유림, 후손, 마을주민 등 80여명이 자리를 함께 하여
선생의 숭고한 나라사랑 정신과 희생정신을 기리며, 추모의 의미를 더 했다.
충의사(忠義祀)는 선생의 창의 110주년이 되는 2017년에 준공, 위패를 모시고부터 보존회에서 향사를 봉행하게 됐다. 도암 신태식 의병장은 1902년 내부주사(內部主事) 통훈대부(通訓大夫) 중추원(中樞院) 의관(議官)을 역임하고, 1895년 의병을 일으켜 밀정혐의가 있는 가은면 김골패(金骨牌)와 상주의 강용이(姜龍伊) 등을 농암(籠岩) 장터에서 총살했다. 이어 1907년 8월 3일 단양에서 다시 의병을 일으켜 의병 수백 명의 도대장(都大將)에 취임하고, 울진, 평해, 영양, 영월, 산동, 제천, 원주, 홍천, 철원(鐵原) 등지에서 1908년 12월까지 의병으로 활약했다. 그의 휘하 장졸은 도선봉(都先鋒)에 김세영(金世榮), 좌선봉(左先鋒)에 강창근(姜昌根), 중군(中軍)에 유제칠(柳齊七), 참모(參謀)에 엄해윤(嚴海潤), 영솔(領率)에 조수안(趙守安), 별포(別砲)에 김운선(金雲先) 등이다. 특히 가은읍 완장리 출신 불멸의 의병장 운강 이강년 의진과 합세해 소모후군장(召募後軍將)으로 혁혁한 전과를 올렸다. 그러던 중 1908년 12월 14일 영평(永平) 리동(裡洞)전투에서 왼쪽 다리에 총상을 입고 적에게 사로잡혀 1909년 2월 16일 경성지방재판소에서 교수형을 선고받았으나, 영평 면민들의 진정으로 10년형으로 감형됐다. 그런 고난 후에도 신태식 의병장은 1918년 1월 19일 출옥하고도 3.1 만세운동에 참여했고, 상해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경상도 방면에서 조선 독립 후원 의용단을 조직, 독립운동을 위한 군자금을 모금하는 운동에 참여 경상북도 단장에 선임됐다. 이런 죄목으로 신태식 의병장은 일제에 의해 1922년 12월 28일 대구감옥에 재수감돼 2년의 옥고를 치렀다. 그러나 1924년 6월 5일 출옥한 뒤에도 계속 항일 투쟁을 전개하다가 1932년 1월 15일 향년 69세로 별세했다. 정부는 이런 신태식 선생에게 1968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선생은 나라사랑의 지극함을 가사(歌辭) 답산가(踏山歌)와 창의가(倡義歌)로 남겼으며, 문경문화원은 1986년 ‘문경대관’에 전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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