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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물고 싶었던 순간들
박윤일
문경문인협회 부회장 문경차인회 사무국장
계절의 끝자락, 어느 화창한 주말 오후 문수사에 갔다. 구미석사모 회원의 주선에 의한 번개팅이다. 솔 숲길을 따라 문수산 중턱에 차실에 도착했다. 깍아지른듯한 암벽사이에 자리 잡은 차실에 앉으니 신선이 된 느낌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곳의 좋은 차실과 멋진 공연장은 주지스님이 종교,정치,지역 등 모든 벽을 허물어 일반인에게 자유롭게 개방,이용케 한다니 세상사람에 대한 스님의 열린 사랑을 느끼게 된다. 특별히 스님이 함께한 우리의 찻자리는 다른 차손님의 시선을 한 곳으로 모은다. 스님의 법명은 월담(月潭)이라고 하며 그 의미를 설명해주셨다. 월담이라는 것은 담을 잘 넘는 도둑이라는 의미인데 자기가 과거에 도둑질을 잘하여 지은 별명이라고 한다. 진짜 그런 줄 알고 들었는데 나중에는 농담이라고 하여 모두 다 파안대소했던 기억이 난다. 월담이라는 한자의 참뜻은 ‘연못 속에 비친 달’이다. 스님은 법명인 월담을 자세하게 설명해 준다. 연못 속에 달이 들어있지만 실제 달은 하늘에 있다. 연못 속에 비춰진 달은 가짜의 달, 허상이다. 마찬가지로 겉으로 인간의 모습도 인간의 실체가 아닌 허상이다. 우리는 허상, 즉 가짜 실체를 쫓으며 살고 있다. 스님의 법명은 그 자체로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다. 이어 스님은 “인생은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는 노정이라고 말한다. 生不知來處(온 것이 분명한데도 온 곳을 모르고) 死不知去處(가야할 곳은 확실한데 갈 곳을 모른다)가 우리인간의 본 모습이라고 한다. 가수 최희준의 노래가 문득 스쳐 지나간다. “인생은 나그네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 가”. 우리인생은 잠시 머물다가는 하숙생과 같은 존재이다. 문수사 차실은 모든 이에게 편안한 휴식공간으로 제공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차실운영을 위한 모든 것을 뒷받침할 수 없어 아쉽다고 한다. 그래서 차실을 이용하는 사람이 다음 이용자를 위한 배려를 해주었으면 한다며 “아니온 듯 가시옵소서”라는 문구를 차실 한구석에 예쁘게 적어놓았다. 석은유 차선생은 이곳을 홍보하는 공간으로 활용하도록 배려 받았다고 한다. 해서인지 좋아서 못사는 얼굴이다. 평생 차와 더불어 살겠다고 하는 석선생과 우리 문경차인회의 꿈이 하나둘 이루어지기를 기원해 본다. 차가 있는 아름다운 공간이 도처에 생기는 그 날까지 그리고 모든 사람이 만나면 서로 차를 권하는 세상이 오는 그날까지 서로 미약하지만 다함께 힘을 모아보자고 다짐한다. 오후 늦게 문수사차실에 내려와 일행과 함께 인근의 반점에 들러 해물짬뽕을 나눠먹었다. 얼마나 맛있던지 따스한 스님의 마음처럼 아직도 구수하게 긴 여운을 남기고 있다. 오늘 하루는 정말 머물고 싶었던 순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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