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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득용 시인, 문경문학관 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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宿鳥嶺(숙조령) - 새재에서 묵다
율곡(栗谷) 이이(李珥)
登登涉險政斜暉 등등섭험정사휘 험한 길 벗어나니 때마침 해는 기우는데
小店依山汲路微 소점의산급로미 산자락 주점은 물뜨는 길조차 가물가물
谷鳥避風尋樾去 곡조피풍심월거 골짜기 산새는 바람피해 숲으로 찾아들고
邨童踏雪拾樵歸 촌동답설습초귀 아이는 눈 밟으며 나무 지고 돌아간다
羸驂伏櫪啖枯草 리참복력담고초 여윈 말은 구유에 엎드려 마른 풀을 씹는데
倦僕燃松熨冷衣 권복연송위냉의 피곤한 몸종은 소나무 태워 차가운 옷을 다리네
夜久不眠群籟靜 야구불면군뢰정 잠못드는 긴 밤은 적막도 깊은데
漸看霜月透柴扉 점간상월투시비 싸늘한 달빛만 사립짝에 얼비치네
숙조령(宿鳥嶺)은 1814년 간행된 『율곡전서 권1』에 수록되어 있으며 새재 주막 입구에 시비(詩碑)가 있다. 시비 중 오른쪽 자연석(높이 127㎝)에는 한시 원문이 왼쪽에는 번역하여 율곡을 소개하고 있다. 새재는 길손들의 왕래가 잦아 조령원, 동화원, 신혜원의 원터와 주막이 있다. 원(院)터는 출장 온 관리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는 곳으로 나라에서 정해준 숙박시설이었다면 주막촌(酒幕村)은 일반 백성들이 운영하는 시설이다. 1930년대까지만 해도 새재 주막은 산판(山坂)으로 번성하였다. 그곳에서 하룻밤을 묵는 율곡이 겨울밤의 회포와 정경을 세밀화로 그려내고 있다.
새재의 “험한 길 벗어나니 때마침 해가 기우는데/ 산자락 주점은 물 뜨는 길조차 가물가물”하다. 험한 산길을 벗어났다고 하는 것을 보니 제3관문인 조령관 아래 위치한 동화원(棟華院)이 아닐까 한다. 새재의 마지막 마을로 이곳은 해가 뜨는 것도 보이고 산에 꽃이 피어 화려하다는 뜻으로 이름 붙여진 동화원은 30여 주막과 원터가 있던 곳이었다. 해가 ‘기우는’ 것은 해가 진다는 의미이고 ‘가물가물’한 것은 날이 벌써 어둑어둑해져 사물을 똑똑히 알아볼 수 없는 지경으로 겨울밤이 일찍 찾아오는 것을 두고 시간의 형용사가 진행형이 되고 있다. 그뿐이랴, 밤이 되니 산새들은 바람을 피해 숲으로 몸을 숨기고 나뭇짐을 진 아이는 눈길을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 지금은 흔히 볼 수 없는 새재의 옛길로 우리를 이끄는 율곡이 새재 도화서(圖畵署) 화원이 되어 고단한 여정을 적는다.
필시 기행(紀行)이 아니라 공무로 인한 귀가 길임에 틀림이 없다. 야윈 말이 짐을 탐할 리야 없지만 그래도 먼 길을 함께해온 “여윈 말은 구유에 엎드려 마른 풀을 씹”고 “피곤한 몸종은 소나무 태워 차가운 옷을 다”리는 것을 바라보는 율곡의 심사(心思)가 편안할 리 없다. 하여 “잠못 드는 긴 밤은 적막도 깊”다며 정적이 흐르는 겨울밤의 끝을 잡고 있다. “싸늘한 달빛만 사립짝에 얼비치”는 시어들이 객사(客舍)의 달빛으로 눈에 어른거린다. 야윈 말과 수고스러운 몸종이 마음에 걸려 자신의 구사(九思) 구용(九容)이 격물치지(格物致知)가 되는 새재의 겨울밤이다.
------ 이이(李珥, 1536~1584 ) 조선중기 문신학자, 본관 덕수, 호 율곡, 시호 문성(文成), 이조판서 역임 저서 『격몽요결』, 「동호문답」, 「인심도심설」, 『성학집요』 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