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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득용 시인, 문경문학관 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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冬日領內赴京 踰鳥嶺作 -겨울날 서울 가는 길에 새재를 넘으며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嶺路崎山虛苦不窮 새재의 험한 산길 끝이 없는 길 령로기산허고부궁
危橋側棧細相通 벼랑길 오솔길로 겨우겨우 지나가네 위교측잔세상통
長風馬立松聲裏 차가운 바람은 솔숲을 흔드는데 장풍마립송성리
盡日行人石氣中 길손들 종일토록 돌길을 오가네 진일행인석기중
幽澗結氷厓共白 시내도 언덕도 하얗게 얼었는데 유간결빙애공백
老藤經雪葉猶紅 눈 덮인 칡덩굴엔 마른 잎 붙어 있네 로등경설엽유홍
到頭正出林界 마침내 똑바로 새재를 벗어나니 도두정출림계
西望京華月似弓 서울 쪽 하늘엔 초승달이 걸렸네 서망경화월사궁
이 한시는 칠언율시로 언제 씌어졌는지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지만 세모(歲暮)의 느낌으로 고요하다. 새재 옛길은 주흘산(1106m)과 조령산(1026m)를 사이에 둔 약 7㎞에 이르는 험한 고갯길로 어쩌면 18년 유배형을 마친 결코 순탄치 않았던 다산의 생애와 오버랩 되고 있다. 다산이 누구인가. 평생을 왕도정치의 이념을 구현하며 애민(愛民), 교민(敎民), 양민(養民), 휼민(恤民)의 목민지도(牧民之道)를 실천하였으나 신유사옥으로 유배라는 삶의 벼랑 끝에서도 불후의 명저를 남긴 조선의 대표적 지성(知性)이 아니던가. 원래 시는 자신이 체험한 정신세계의 발로이지만 이 시는 미학적 감정보다는 마치 자신이 살아온 치열한 삶을 비장함으로 경계하고 또 경계하며 담백한 시적 진실(Poetic Truth)이 "새재의 험한 산길 끝이 없는 길”을 넘고 있다.
폴발레리(1871~1945)는 ‘시는 절규, 눈물, 애무, 키스, 탄식 등을 암암리에 표명하고자 하는 것을 언어로 표현하거나 재현하고자 하는 시도’라고 했다. 그렇다면 “벼랑길 오솔길로 겨우겨우 지나” 가는 것이 어찌 다산 한 사람 뿐이겠는가. 살을 에이는 골바람의 끝을 부여잡은 소나무가 웅웅 울면 “차가운 바람은 솔숲을 흔”든다. 눈 그친 산과 계곡은 기약없이 하얗게 얼어 허기진 시간 위에 칡넝쿨 마른 잎이 설렁인다. 겨울 산길은 아무리 동동 걸음을 해도 숨쉬기조차 거북한 맞바람이 고약스럽다. 풍진 세상을 견뎌온 다산이 겨울 나그네가 되어 새재를 넘는 것은 필시 연유가 있겠지만 “마침내 똑바로 새재를 벗어”난 다산은 얼마나 힘들고 지쳤으면 ‘마침내’라는 부사의 종결어미로 비로소 안도(安堵)할까.
그러나 이미 “서울쪽 하늘엔 초승달이 걸렸”다면서 등이 굽은 섬월(纖月)을 안타깝게 바라본다. 아 어이할거나. 서울 가는 길은 곧 캄캄한 밤이 되는데 아직도 두물머리 고향은 아득하기만 한데 저 초승달 잡을 길 없는 세상사 ‘겸손은 사람을 머물게 하고, 칭찬은 사람을 가깝게 하고, 넓음은 사람을 따르게 하고, 깊음은 사람을 감동하게 한다’지만 다산의 보름달은 언제나 뜰까.
------ 정약용 (1762~1836) 본관은 나주, 조선 정조 때의 문신, 실학자, 저술가, 철학자, 과학자 저서 『경세유표』 『흠흠신서』 『목민심서』 『여유당전서』 외 500여 권 ‘2012년 유네스코 세계기념인물’로 장자크 루소와 헤르만헤세와 함께 선정 |